전도사 젠슨 황이 만드는 환각
전도사 젠슨 황이 만드는 환각
초등학생 막내가 6·3 지방선거 전에 공보물을 함께 보다가 말했다. “‘AI 교육 대전환’을 내건 후보는 뽑지 않으면 좋겠다”고. 몇달 전 아이는 그림을 몇초 만에 생성해내는 AI 프로그램을 접하고 분노한 적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공들여 그린 그림에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다. 아이는 SNS나 스마트폰을 즐겨 쓴다. 하지만 AI로 인해 삶의 큰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느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 AI를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최근 미국 대학 졸업식 풍경을 보며 내 아이가 느낀 분노와 좌절감이 겹쳐졌다.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지난달 한 대학 졸업식에서 학생들의 구직 불안을 이해한다면서도 AI가 바꿀 미래에 적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자 야유가 쏟아졌다. 빅머신 레코드의 CEO 스콧 보르체타가 다른 대학 졸업식에서 “음반 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순간에도 AI가 음반을 다시 쓰고 있다”고 말하자 역시 학생들의 야유가 나왔다. 보르체타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받아들여라. 여러분이 지금 내 얘기를 듣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다.” 야유는 더 커졌다.
AI 사업가들 방한에 열광하면서 가톨릭 교황의 회칙에는 무관심
자본 이윤 창출에 치우친 AI 담론 우리가 좇는 건 황금송아지 아닌가
퀴니피액대 3월 조사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이 AI가 일상생활, 직업, 교육 등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수 미국인들은 기술기업들의 AI 개발·활용이 투명하지 않고, 정부 규제가 충분치 않다고 했다. AI의 의료·군사 이용에 부정적이며, 데이터센터 건설 반대 여론도 높았다. AI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모든 영역에서 전년보다 늘어났고, 특히 AI에 익숙한 Z세대(1997~2008년생)에서 가장 반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AI의 고삐 풀린 개발과 무차별적 활용으로 인해 취직 전망은 더 어두워졌고 인간관계는 더 단절됐으며 기후와 환경이 악화되는데, 어떻게 긍정적일 수 있겠는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이고 과연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가. 이런 세상에서 더 오래 살아가야 할 사람은 또 누구인가. 그런데도, ‘바꿀 수 없는 흐름이니, 적응해야 한다’니.
처한 상황은 다르지 않지만, 한국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최근 한국은 온 사회가 나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극진히 모셨다. 그는 AI 주요 구성품을 독점 설계하는 사업가일 뿐이지만, 한국에서 그 영향력은 가히 신적이라 할 만하다. 관료, 기업인, 대학 총장, 언론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고, 하루에 닭을 몇 마리 먹었는지까지 화제가 됐다. 하지만 AI 업계의 거품 섞인 막대한 순환투자 고리 속에 국가 경제가 더 깊이 편입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부각하지 않았다.
신기술에 대한 이토록 열렬한 반응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는 깊이 탐구해봐야 할 것이다. 식민지배와 분단에 이은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며 정신적 가치나 공동체가 급속히 해체되고, 돈과 힘이 온 사회의 최우선 가치가 된 것과 관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로봇 스님’을 선보인 조계종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인간성 상실 위기에 대한 종교적 성찰과 혜안은 찾기 어려웠고 대중의 흥미에 편승해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얕은 계산만 보였다. 레오 14세 교황이 오랜 토론 끝에 인간 존엄성, 관계의 의미, 노동의 가치를 중심으로 AI 기술을 비판하는 회칙을 내놓은 것과 대비됐다.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은 압도적으로 산업 진흥을 통한 자본의 이윤 창출에 치우쳤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민간위원 36명이 대부분 산업, 과학기술계 인사로 채워졌고, 노동계 인사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이 잘 보여준다. 노동 현장에서 AI 도입을 구실로 신규 채용을 꺼리고, AI가 힘든 일을 줄이기보다 노동을 착취하고 배제하는 쪽으로 이용되고 있는 점이 분명해진 상황에서도 국가의 정책 담론에는 그런 우려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향후 이재명 정부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고려될 것이다.
젠슨 황에 이어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다시 한국에 온다고 한다. AI 전도사들의 잦은 방한, 과연 축복일까.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신은 출애굽기 속 황금송아지가 아닌가.<손제민, “젠슨 황이 만드는 환각”, 경향신문, 2026.6.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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