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아버지
[변평섭의 세상 이야기] 아버지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른으로 존경받던 성철(性徹) 스님의 ‘아버지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스님이 출가하기 전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이 13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계신 절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딸은 반가워 아버지 성철스님 앞에 넙죽 엎드렸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딸을 보자마자 냉정하게 ‘가라!’ 하고는 자리를 멀리 피했다.
딸이 미워서 그랬을까. 아니다. 딸이 너무 사랑스럽지만, 더 큰 영혼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딸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결국 딸은 삭발을 하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스님이 되었다. 법명은 불필(不必).
그는 아버지 성철스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먼 거리에서 살았지만, 한순간도 ‘아버지’를 잊어본 적이 없다. 성철스님이 돌아가시어 다비식을 할 때는 3배가 아닌 9배를 올렸다고 한다. 성철스님 역시 저세상에 가서도 가슴에 딸을 품고 있었으리라.
민주당 대구시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6월 2일 선거 전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단상에 올라가 대구 시민들에게 목맨 호소를 했다. 그리고는 “아부지! 한 번만 저를 도와주소! 아부지…” 하고 외쳤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눈물 어린 호소였다. 김 전 총리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작고하셔서 더욱 부정(父情)을 느낄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31년 TK 보수의 핵심, 대구는 그동안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번만은 꼭 민주당 시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대구 출신 거물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내세웠던 것.
김 전 총리는 선거 중반까지도 대구를 바꿔보자며 여론이 매우 높았는데, 후반기에 들어서자 역시 대구에서는 TK 자존심을 지키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김 전 총리도 그 기류를 느끼며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른 것이 아닌가. TV에 나타난 김 전 총리는 “아부지, 보고 싶었습니다. 아부지 애창곡을 불러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전선야곡’을 불렀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그는 더 부르지 못하고 ‘아부지’를 외쳤다. 결국 그는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비록 그는 낙선을 했지만, 눈물 젖은 목소리로 ‘아부지’를 외치던 모습은 민주당원이 아니더라도 가슴을 절절하게 했다.
정말 우리는 삶이 힘들 때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나는 해방 직후 어느 해의 수해를 잊지 못한다. 그때 비가 엄청나게 내려서 금강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금강 옆 넓은 밭에다 감자를 심었는데 금강이 감자밭을 휩쓸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물에 잠긴 감자밭 가운데에서 썩은 감자를 들고 우두커니 서 계시던 모습이 내 한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때 수해의 충격으로 가지고 계시던 논밭을 전부 팔아 대전으로 이사를 하여 정미소를 운영하셨다. 그렇게 하여 사업을 하지 않고는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버지께서 홍수에 휩쓸린 감자밭에 허탈하게 서 계시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니 아버지의 심정을 알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으며 자식들 등을 다독여주는 아버지. 괴로움이 있어 술이라도 한잔하는 일이 있으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던 아버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내가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밤하늘의 무수히 반짝이는 별을 보면 저 별 중에 아버지가 있으리란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별에서 왔고 죽어 별이 되리라는 시인의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반짝이는 별은 큰 위안이 된다.
훗날 나도 조그마한 별이 되면 내 아이들을 향해 반짝이리라. 나도 부족하지만 아버지니까.<변평섭, “아버지”, 시대일보, 2026.7.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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