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부여에서 부르는 신동엽, 알맹이의 노래

신상구 | 2026.07.24 12:58 | 조회 13


                             4월 부여에서 부르는 신동엽, 알맹이의 노래

 

   해마다 4월이 오면 강물은 더욱 푸르게 일어서고, 대지는 겨우내 함구했던 생명의 언어들을 터뜨린다. 이 찬란하고도 아픈 계절이 오면 오래전 다녀온 부여의 풍경이 되살아난다. 그곳은 단순한 답사지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이 머물던 자리였고, 가장 순결한 정신의 알맹이를 대면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나, 우리 문학사에 거대한 산맥으로 남은 시인 신동엽의 숨결이 여전히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온갖 거짓과 위선, 그리고 본질을 가리는 화려한 수식어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 “사월이면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했던 시인의 사자후는 그 시대의 외침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를 일깨우는 커다란 죽비소리로 다가온다.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시인의 생가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나지막한 초가이다. 시인 신동엽이 태어나 자라고, 운명적 사랑인 인병선 여사와 신혼의 단꿈을 꿈꾸던 곳이다.

   이곳 마당 한편에 서면 시인이 동아일보에 게재한 산문 「서둘고 싶지 않다」에서 고백했던 문장이 귓가를 맴돈다.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 질러 봤으면” 그에게 시와 사랑과 혁명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억압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가장 순수한 본질로 돌아가고자 했던 하나의 열망이었다.

생가 바로 옆에 자리한 신동엽문학관은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품들을 통해 짧았지만 치열했던 삶을 복원해 놓았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굶주림 끝에 먹은 게로 인해 얻은 간흡충이 결국 그의 생을 갉아먹었다는 비극적인 사실 앞에서, 그가 남긴 시어들은 더욱 형형한 빛을 발한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대서사시 『금강』을 썼고, 「아사녀」를 불렀으며, 「껍데기는 가라」를 외쳤다.

   시인은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 부여 능산리 백제왕릉 앞산에 영면해 있지만, 그가 역사와 민족 앞에 애절하게 부르짖은 노래는 부여의 들판과 금강의 물결 속에 지금도 살아 있다. 부여 금강변에는 「산에 언덕에」 시비가 있고, 그의 모교인 부여초등학교 교정에는 『금강』 시비가 있다.

   그런데 4월이라는 계절 탓인지 아니면 현직에서 자주 가르쳐서 그런지 부여를 방문하고 시인을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껍데기는 가라」가 먼저 떠 오르고 읊조려진다. 「껍데기는 가라」 시비는 시인의 대학 모교인 전주교육대와 단국대학교 교정, 그가 잠시 교사로 재직했던 동국대학교사범대부속여자중학교 교정, 그리고 홍성 만해민족시비공원 등에 세워져 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 사                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전문

 

   이 시에서 ‘껍데기’는 민족의 화합을 가로막는 외세와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독재, 그리고 우리의 본성을 가로막는 모든 가식과 위선을 상징한다. 반면에 ‘알맹이’는 4.19의 순수한 정신이며, 동학 농민들이 곰나루에서 질러댔던 자유의 아우성이다. 시인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이 우리 역사의 진실이라고 선언한다. 전쟁의 상흔인 ‘쇠붙이’가 물러간 자리에 아사달과 아사녀가 서로의 알몸을 마주하며 맞절하는 세상, 그것이 신동엽이 꿈꾼 문학적 이상이었다.

  “껍데기는 가라”는 반복되는 외침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시대를 정화하고 진정한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이다. 결국 이 시는 우리가 지금 붙들고 있는 가치가 허상인지 진실인지 되묻게 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진짜 삶, 알맹이의 의미를 회복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신동엽의 문학은 이렇게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진행형인 우리의 과제다. 해마다 4월이면 우리는 다시 묻는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여전히 살아 있다. 금강의 물처럼, 조용하지만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방경태, “4월 부여에서 부르는 신동엽, 알맹이의 노래”, 금강일보, 2026.4.8일자.>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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