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슬기로운 노년 생활

신상구 | 2026.08.21 13:14 | 조회 63

                                    AI 시대의 슬기로운 노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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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 변호사

 

AI, 디지털 장벽 낮출 사다리

사회참여·존엄 문제로 접근을

 

읽기 어려운 글 세줄 요약부터

하루10분이면 AI 익히기 출발

 

예전 청년들 농촌 일손돕기처럼

어르신 돕는 ‘디지털 농활’ 필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늙는다는 말 속에는 두 갈래 길이 숨어 있다. 세상과 조금씩 멀어지는 길과 세상을 새롭게 배우며 다시 젊어지는 길이다. 예전에는 노년이 곧 물러남의 시간으로 여겨졌다. 일터에서 물러나고,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고, 빠르게 바뀌는 기술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시대에 노년은 퇴장의 시간이 아니라 재학습의 시간이고, 상실의 계절이 아니라 지혜와 기술이 만나는 새로운 개화의 계절이 될 수 있다.

AI를 처음 접하는 노년 세대는 흔히 두려움을 느낀다. 버튼 하나 잘못 누르면 큰일이 날 것 같고, 알 수 없는 영어와 기호들이 눈을 가린다. 젊은 세대가 당연하게 쓰는 앱 하나도 낯설다. 은행 창구는 줄어들고, 병원 예약도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가며, 관공서 민원도 전자문서와 인증서의 숲을 지나야 한다. 세상은 편리해졌다고들 하지만, 그 편리함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더 높은 장벽이 됐다. 이것이 디지털 격차의 실제 얼굴이다.

그러나 AI는 그 장벽을 더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제대로 쓰면 그 장벽을 낮추는 사다리가 될 수 있다. 예전의 컴퓨터는 사람이 기계의 언어를 배워야 했다. 명령어를 외워야 했고, 메뉴 구조를 익혀야 했고,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다르다. 사람의 말로 물으면 사람의 말로 대답한다. “이 문자를 무슨 뜻인지 쉽게 설명해 줘” “병원 예약 문자를 정리해 줘” “손주에게 보낼 생일 축하 문구를 써 줘” “상속 절차를 순서대로 알려 줘” 하고 말하면 된다. AI는 노년의 말을 기다려 주는 참을성 있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노년에 AI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돋보기이고, 비서이고, 말벗이고, 때로는 작은 서재이다. 신문기사를 요약해 주고, 어려운 법률용어를 풀어 주고, 혈당 기록을 정리해 주고, 여행 일정을 짜 주고, 오래된 사진 속 추억을 되살려 준다. 자녀에게 보내는 서운한 말을 부드럽게 다듬어 주고, 병원에서 들은 설명을 다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는 하루의 대화를 열어 주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기억의 우물에서 문장을 길어 올리게 해 준다. AI는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잠들어 있던 표현 능력과 생활 능력을 다시 깨우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노년층의 AI 활용을 단순한 취미 교육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는 존엄의 문제이고 사회참여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정보 접근 능력을 잃은 사람은 점차 자기 결정권을 잃는다. 은행 업무를 혼자 처리하지 못하고, 병원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공 서비스 신청을 하지 못하면 삶의 중요한 선택을 남에게 의존하게 된다. 반면, AI를 익힌 노년은 삶의 주도권을 일정 부분 되찾을 수 있다. 늙어서도 묻고 배우고 판단하고 기록하고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AI 시대 노년의 새로운 자립이다.

물론 AI가 만능은 아니다. AI는 틀릴 수 있다. 그럴듯한 말로 잘못된 답을 내놓을 수 있고, 중요한 법률·의료·세무 문제에서는 반드시 전문가 확인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를 함부로 입력해서도 안 된다. 금융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가족의 민감한 사정, 사건의 핵심 자료를 무심코 넣는 일은 피해야 한다. AI 시대의 지혜는 무조건 믿는 데 있지 않고, 잘 물어보고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 AI를 종처럼 부리되, 주인으로 모셔서는 안 된다. 판단의 최종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슬기로운 노년 생활을 위해서는 거창한 출발이 필요 없다. 하루 10분이면 충분하다. 오늘 온 문자 하나를 AI에게 쉬운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해 보자. 읽기 어려운 기사를 세 줄로 요약해 달라고 해 보자. 손자에게 보낼 안부 문자를 다정하게 바꿔 달라고 해 보라. 오래전 여행의 기억을 말로 불러 주고 수필로 정리해 달라고 해 보라. 이러다 보면 AI는 어느새 두려운 기계가 아니라 책상 위의 다정한 연필이 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대학·도서관·복지관도 역할을 해야 한다. 노년층 AI 교육을 일회성 특강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을 들고 실제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병원 예약, 교통 앱, 금융사기 예방, 보이스피싱 식별, 가족 소통, 글쓰기, 사진 정리, 건강관리 등 삶의 현장과 맞닿아야 한다. 청년들이 농촌에 내려가 일손을 돕던 예전 농활처럼, 이제는 젊은 세대와 전문가들이 어르신을 찾아가 AI 사용법을 돕는 ‘디지털 농활’이 필요하다. 기술 문명의 혜택이 수도권과 젊은층에만 머물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또 다른 소외다.

나무는 오래되면 속이 비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남은 가지 끝에서 다시 새잎이 돋는다. 노년의 삶도 그러하다. 젊은 날의 속도는 사라졌지만, 긴 세월을 건너온 통찰과 인내가 남아 있다. 여기에 AI라는 새 도구가 더해지면 노년은 더는 뒷방의 시간이 아니다. 삶을 정리하고, 경험을 전하고,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또 한 번의 봄이 될 수 있다.

AI 시대의 슬기로운 노년 생활은 젊은이 흉내를 내는 게 아니다. 자신의 속도로 배우고, 자신의 언어로 묻고, 존엄을 지키며, 세상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휴대전화 속 작은 AI 창을 열어 한마디 물어보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노년의 새로운 문명이 시작된다.<강민구, "AI 시대의 슬기로운 노년 생활", 문화일보,  2026.8.21일자.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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