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기인의 경계,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

신상구 | 2026.08.21 17:08 | 조회 34


                              천재와 기인의 경계,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

 

이제 며칠만 지나면 설 명절이다. 신정과 다르게 세배를 올리고 조상의 묘소를 찾는 이 시기에, 나는 지난 몇 년간 문학 답사를 다니며 만났던 숱한 선배 문인들의 발자취를 떠올린다. 그중에서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에 잠든 김관식 시인의 묘소는 그의 생전 기행만큼이나 잊지 못할 일화를 남겼다.

                    

              김관식 시인 묘소 옆에 있는 큰길에서 바라본 시인의 생가터 소룡리 입구.

 

                   

김관식 묘소 전경. 좌측부터 흰색이 논산시에서 설치한 묘소 안내문, 포토존, 「무제」 시비, 시인의 묘, 묘앞에 상석, 묘 우측 작은 검은색은 부인 방옥례 여사 묘이다.

 

소룡리 마을 입구 큰길가에 조성된 그의 묘역은 크지는 않지만 시비와 안내판, 포토존까지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의 묘에는 묘비가 없고, 뒤에 평장으로 모셔진 부인 방옥례 여사의 묘비에도 시인과의 관계가 명시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답사 당시에 방옥례 여사가 시인의 부인인 줄을 몰랐었다. 그래서 묘소를 제대로 찾고도, 당황하고 의심스러워 예전의 사진을 보면서 묘비를 찾아 이정표 없는 산길에서 헛수고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묘역은 시인다운 풍경이었다. 철쭉 울타리가 둘러친 묘역은 꽃피는 계절이면 장관이 될 듯하고, 시설물들이 옆으로 병렬 배치된 모습은 어쩐지 그의 ‘비정형적 삶’과 닮아있다. 시인의 묘소는 봉분이 있으나 아내의 묘소는 평장이다. 합장도 아니고 같은 크기도 아니다. 그 불균형은 시도, 삶도, 사랑도, 술도 늘 극단으로 치달아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김관식이라는 인물의 비극을 상징하는 듯했다.

                    

                        김관식 시인

 

   김관식 시인은 1934년 삼짇날, 한약방을 경영하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4세 때 이미 한문 경서를 배우며 제자백가를 익혔고, 8·15 광복 직후 학생들이 한글도 제대로 모를 때 그는 학교 시험에서 답을 모두 한문으로 썼을 정도로 신동이었고 천재였다. 혹자는 ‘미친 아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강경상업고 시절 금강 둑길을 걸으며 수천 편의 시를 외웠던 암기력은 훗날 그가 호방한 성격과 동양적 예지를 결합한 독보적인 시풍을 확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22세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27세에 4·19 혁명을 맞이하자 ‘대한민국 시인’이라는 명함을 들고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시 정치권 실세였던 장면과 맞붙는 기개를 보였다. 비록 낙선했으나 가난한 문우들을 위해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서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식을 견디지 못하는 선비의 서슬 퍼런 독설과 자존심으로 술에 취해 지게꾼에 실려 귀가하고, 교장 사택에 용변을 보는 등 남다른 기행과 호쾌한 기개로 세인에게 회자되곤 했다.

   그의 결혼담 또한 한 편의 소설이다. 서정주의 처제인 방옥례 여사에게 반해 온 읍내에 “우리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는 유인물을 뿌려 끝내 아내로 맞이한 ‘현대판 서동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논산 연무읍 소룡리에 있는 김관식 시인의 생가터. 시인의 묘소 바로 옆 동네에 있다.

                       

     논산시에서 묘역 정비 하기 이전의 모습. 이때는 '시인김관식지묘'라 씌여진 묘비가 있었다.


  그러나 김관식 시인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무모한 국회의원 출마, 시인의 마을(예술촌) 건설, 주벽 등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였고 위궤양, 폐결핵 등의 병마와 싸우다가 1970년 8월 30일, 간염으로 37세에 요절했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생은 길이로 측정되지 않고 불꽃의 높이로 기록되는 삶이었다.

   김관식 시인은 요절로 문단 활동 기간은 짧았으나 문학성이 높은 작품이 많다. 1952년 첫 시집 『낙화집』을 출간하고 이후 『김관식 시선』을 발간하였다. 사후에는 시선집 『다시 광야에』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행되었다. 그리고 모교인 강경상업고 교정에 「이 가을에」,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다시 광야에」, 논산시민운동장에 「거산호」, 소룡리 묘소 옆에 「무제」 시비가 지금도 그의 시혼을 밝히고 있다.

 

   옛날에 동릉후가 청문에서 외밭 고랑을 탔다더니

   한여름내 땀으로 가꾼

   무 배추가 서푼에 팔리나니

   배부른 자여 은진미륵처럼 커서

   코끼리 같은

   벽이 되거라

   나는 엄나무마냥 야위어 산다

   가시가 돋힌....

-김관식, 「무제」 시비 전문

           

     논산 연무읍 소룡리 김관식 시인 묘소 좌측에 있는 시인의 「무제」 시비.

 

  그의 묘소를 지키고 있는, 이 시는 ‘지독한 가난’이라는 결핍의 현실 속에서도 세상의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는 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인은 소통 불가능한 탐욕적 타자를 위압적인 ‘벽’으로 규정하며, 이에 맞서는 시적 화자 자신을 가시 돋친 ‘엄나무’에 비유한다. 이는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이자, 비참한 현실을 오기로 버텨내는 치열한 자의식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가난과 병마 속에서 요양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선비의 자존심’을 지키고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그의 삶이 투영된 것이다.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 그의 묘역에는 묘비가 없다. 시비가 묘비이고 그의 삶이 담긴 시가 곧 묘비명이다.< 방경태, “천재와 기인의 경계, 대한민국 시인 김관식”, 금강일보, 2026. 2. 11일자.>

              

           김관식 시인의 모교인 강경상업고 교정에 있는 「이 가을에」 시비.

 

               

                논산시민운동장에 있는 김관식 시인의 「거산호」 시비.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있는 김관식 시인의 「다시 광야에」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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