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생을 읽지 못한다

신상구 | 2026.09.14 11:45 | 조회 4


                                      AI는 인생을 읽지 못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삼국지’를 별로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이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간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로서는 격세지감이다. 수백 명의 인물이 만들어내는 암투와 모략은 나에게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려줬다.

  나를 포함한 40대에게 삼국지는 책뿐 아니라 게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코에이 사에서 제작한 전략 게임 삼국지 시리즈가 그것이다. 원작 소설과 동일한 배경 위에서 게임 삼국지는 플레이어가 한 세력의 군주가 되어 지역을 다스리고, 물자와 병력과 장수를 모아 천하통일을 직접 이뤄보게끔 한다.

  게임 삼국지의 특징은 인물을 이야기가 아닌 숫자로 새겨 놓는다는 점이다. 장수마다 무력, 지력 같은 능력 수치를 매겨 전투와 계략의 성패를 결정짓도록 한다. 여포의 무력 100, 제갈량의 지력 100 같은 수치들이 장편 소설 속 인물들을 요약하고, 이 명쾌한 통계(스탯)들이 게임의 몰입도를 만들어낸다.

  정돈된 통계는 장수들의 특성을 잘 드러내지만, 그것만으로 소설 속 인물의 모든 캐릭터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매력 99의 유비는 훌륭한 군주로 게임에서 작동하지만, 그 숫자가 도원결의와 삼고초려에 담긴 마음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관우의 충의도, 조조의 냉철함도 숫자 사이로 새어나간다. 스탯으로 보는 인물은 명확하지만, 그 명확함만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취업 준비생의 이력서도 학점과 어학 점수 같은 스탯이 한가득이다. 수치화된 사람의 데이터는 특히 AI가 보편화되는 요즘 시대에 더 의미심장하다. 한 게임 회사는 아예 자기소개서를 AI에 맡겨 뽑았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삼국지 게임이 스탯 바깥의 서사를 읽지 못하듯, 기계가 매기는 점수에 삶의 궤적은 미처 담기지 않는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앞서니 크게 쓰지 말라’ 했지만, 제갈량은 끝내 그를 중용해 눈물로 베어야 했다. 사람을 읽는 일은 숫자 너머의 많은 이야기 속에 있다. 스탯을 계산하는 AI만으로 인사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옛이야기 속에 이미 남아 있다.< 이경혁, “AI는 인생을 읽지 못한다”‘ 조선일보, 2026.9.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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