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신상구 | 2026.09.19 14:40 | 조회 12

  

                                       돌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반려돌’ 키우는 시대, 외로움 이만큼 깊어 돌봄로봇 말 걸어주자 노인 우울감 줄어

         단, 챗봇 오래쓰니 고립감 커졌다는 연구도 결국 필요한 건 AI보다 말 주고받을 사람

 

  온라인 스토어에서 ‘반려돌’을 검색하면 수십 종의 상품이 뜬다. 완제품부터 직접 꾸미는 DIY 키트, ‘핸드스톤’이라 부르는 광물 원석형 등 다양하다. 사람들은 돌에 이름을 붙여주고, 잠자리를 만들어준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생일도 챙긴다. 안내서에는 반려돌과 책 읽기, 노래 듣기, 마음속 고민 말하기 같은 관리법이 적혀 있다. 말을 걸고 싶은데 마땅한 상대가 없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다. 실제로 9월 10일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발표된 한 조사에서 성인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최근 6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열 명 중 여섯은 힘든 일이 있어도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돌보다 훨씬 말이 잘 통하는 상대가 나타났다. 아이 모습을 한 인공지능(AI) 돌봄로봇 ‘효돌’이다(공교롭게도 이 역시 ‘돌’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의료 취약지 독거노인 약 1230명에게 보급된 효돌은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말을 걸면 대답하며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으면 보호자에게 알린다. 올해 초 용인세브란스병원이 그중 430명을 대상으로 사용 전후를 비교한 결과, 우울 고위험군 비율은 35.7%, 사회적 고립감 고위험군 비율은 24.7% 줄었다. 복약 순응도가 양호한 사람의 비율은 27% 늘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대꾸해주는 존재가 생기니 우울이 줄고 약을 챙겨 먹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AI가 외로움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이 2025년 ‘소비자 연구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AI 동반자 애플리케이션(앱)과 대화한 직후 외로움은 사람과 대화했을 때와 같은 수준으로 줄었다. 유튜브 시청 같은 다른 활동보다 효과가 컸다. 이러한 효과는 일주일 동안 매일 앱을 사용해도 꾸준히 나타났는데, 외로움 완화의 핵심은 ‘이해받는 느낌(feeling heard)’이었다.

  하지만 올해 ‘실험사회심리학 저널’에 소개된 연구 결과는 다르다. 연구진은 첫 학기를 보내는 대학 신입생 296명을 세 집단으로 나눴다. AI 챗봇과 대화하기, 무작위로 배정된 동급생과 문자 교환하기, 한 줄 일기 쓰기 중 하나를 2주간 매일 하게 했다. 경청과 공감을 보여주도록 설계된 챗봇은 대화 직후 부정적 기분을 덜어줬지만, 2주 후 외로움을 낮추지는 못했다. 외로움이 줄어든 것은 이름 모를 동급생과 문자를 주고받은 집단뿐이었다. 같은 연구진은 다른 연구에서 영국·미국·캐나다·호주 성인 2000여 명을 1년간 넉 달 간격으로 네 차례 추적했다. 사회적 연결감이 낮은 사람이 챗봇을 더 찾게 되는 것은 맞지만, 챗봇 이용이 늘면 넉 달 뒤 정서적 고립감이 오히려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엇갈리는 결과에는 몇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연구는 대화를 마친 직후를 측정했고, 나머지 두 연구는 2주 뒤, 넉 달 뒤의 변화를 살폈다. 진통제가 통증을 줄여준다고 병까지 낫게 하는 것은 아니듯, 순간의 완화(relief)와 다치고 힘든 마음의 회복(repair)은 다른 문제다. 비교 대상도 다르다. 유튜브와 견주면 AI가 낫고, 사람과 비교하면 사람이 낫다. 게다가 이미 외로운 사람일수록 AI를 더 찾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지난달 ‘네이처 인간행동’에 발표한 연구에서도 오프라인 인맥이 좁은 사람일수록 챗봇을 동반자로 활용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렇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안녕감은 낮았고, 챗봇을 집중적으로 이용하거나 속내를 털어놓을수록 부정적 연관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렇게 보면 아동·청소년들이 챗봇에 정서적으로 기대게 될까 염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이유는 갈증이 더해진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당장의 갈증을 견딜 수 없어서다. 그에게 바닷물이 얼마나 해로운지 설교해봐야 소용없다. 마실 물을 건네야 한다. 챗봇 의존이 왜 문제인지 훈계하기보다, 망가진 인간관계를 되살릴 방법을 찾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효돌로 효과를 본 사람들은 사실상 다른 대화 상대가 없는 독거노인들이었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무언가 있는 편이 낫다는 결과만으로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말 한마디 나눌 상대가 생기자 우울이 줄고 약을 챙겨 먹게 됐다는 사실은 오히려 사회적 상호작용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한지를 새삼 일깨운다. 돌에게 말을 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돌이 아니라, 말을 들어주고 걸어주는 사람이다.<이운주, “돌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동아일보, 2026.9.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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