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가을밤 보름달에 취한 친구들이 볏짚을 엮어 온몸에 뒤집어 썼다. 함께 한다는 믿음이 주는 힘이었을까? 한껏 흥이 오른 까까머리 또래들이 이웃집 마당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며 ‘거북이 놀이’를 즐겼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어른들의 얼굴에는 보름달보다 환한 웃음꽃이 피어 올랐다.
이에 앞서 마을 공마당에서는 고향을 지키는 형님들과, 집안을 일으키려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삼촌들이 ‘촌놈’과 ‘서울놈’으로 나눠 배구 대결을 펼쳤다. 풍물패의 응원에 막걸리가 더해지며 작은 잔치판이 열렸다.
‘한가위’라는 이름은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를 뜻하는 ‘가위’가 합쳐져, 가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명절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신라의 기록인 ‘삼국사기’ 속 ‘가배(嘉俳)’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왕이 궁녀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길쌈을 짜게 하고, 음력 8월 15일에 그 성과를 겨루어 진 팀이 이긴 팀에게 잔치를 베풀며 노래와 춤, 각종 놀이를 즐겼던 고대 농경사회의 축제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한가위는 단순히 음식을 먹고 즐기는 날을 넘어, 한 해 동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을 거두고 이를 조상과 이웃, 온 공동체가 함께 나누며 감사하는 거대한 생태적·사회적 의례였다.
우리 선조들은 한가위가 되면 이른 아침 조상님께 햅쌀로 빚은 송편과 새로 거둔 곡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왔다. 또한, 다가올 해의 풍년을 미리 기원하며 밭고랑에 볍씨를 묻거나 벼, 수수, 조 따위의 이삭을 묶어 방문, 기둥 따위에 걸쳐 두며, 마을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추고, ‘거북놀이’나 ‘소놀이’를 통해 온 마을의 액운을 쫓고 화합을 다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이르러 이러한 전통 세시풍속들은 급격히 자취를 감추거나 형해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디지털 정보화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대가족 중심의 농경 체제가 무너지고 핵가족화와 도시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공동체가 함께 모여 판을 벌이던 놀이문화의 기반 자체가 사라졌다. 또하나는 생활 양식의 개인주의화와 효율성 중심의 사고이다. 명절마저 휴식과 여행의 기회로 소비되거나, 간소화된 제례 문화가 정착하면서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밤새 달빛 아래서 놀이를 즐기던 풍속은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사치스러운 옛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초연결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는 우리의 삶을 눈부시게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적 유대와 온기의 결핍을 심화시키고 있다. 알고리즘이 개인의 취향을 완벽히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된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디지털 연결 속에 살면서도 깊은 고독을 느낀다. 이 시점에서 세시풍속의 소멸은 단순한 전통의 단절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관계의 뿌리’가 흔들림을 경고하는 지표가 된다. 선조들이 한가위 보름달 아래서 함께 춤추고 음식을 나누었던 행위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달빛 아래 서로의 손을 맞잡았던 강강술래의 원형처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차가운 효율성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품앗이와 같은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이번 한가위만큼은 손 안의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보름달처럼 둥글고 넉넉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진정한 ‘만남’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다. <공진희, " 한가위", 충청타임즈, 2026.9.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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