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이렇게 말하던데”라는 말이 신뢰를 얻는 시대다. AI가 100% 옳지는 않더라도 꽤 믿을 만한 답변을 제공하는 도구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AI는 글로벌 프런티어급 AI에 한정된다. 아직까지 주변에서 “000(국산 AI)가 이렇게 말하던데”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생성형 AI 챗봇 시장의 승패는 사실상 결정됐다. 국내 기업이 어떤 서비스를 내놓더라도 이용자들은 프런티어급 AI보다 훨씬 뒤처진다고 평가한다. 지난 7월 기준, 국내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생성형 AI는 챗GPT(2367만명)였고, 2위는 구글 제미나이(947만명)였다. 경쟁할 만한 국산 AI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시장은 이미 해외 AI에 잠식당했고 이용자들은 습관적으로 이 서비스들을 사용하고 있다.
IT 강국이라 불리던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000년대 초 한국 IT를 이끈 건 통신이었다. 세계 최고 속도를 내세운 통신 서비스는 당시 가장 뜨거운 산업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수많은 국산 플랫폼 서비스가 등장했다. 한국은 자유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1위를 하지 못하는 나라이자, 자국 메신저를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나라가 됐다. 한국어를 쓰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 시대가 되자 이 방어막은 무너졌다. 이제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는 한국 기업이 만든 생성형 AI보다 더 정확하게 한국어를 이해하고 구사한다. ‘한국어로 한국인 입맛에 맞게’라는 성공 공식은 붕괴됐다. 신기술에 민감한 한국인들이 바쁜 업무와 일상에서 애국심까지 발휘할 여유는 없다.
엔비디아 같은 생성형 AI 플레이어들이 그나마 한국을 배려하는 것은 오로지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덕분이다. 두 기업이 생성형 AI의 필수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생산하면서 한국에도 다행히 AI 로또가 터졌다. 만약 HBM마저 없었다면 이미 AI 생태계에서 변방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국내 AI 정책을 이끄는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우리는 AI의 속도를 늦출 여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정부도 미·중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국가AI컴퓨팅센터’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민간 기업의 개발 과제를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현실이 한국 AI 산업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AI 기업들은 여전히 사람이 설계한 벤치마크(시험지) 평가 점수를 내놓으며 성능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 지금도 커 보이는 이 격차가 10년 뒤 국가 경쟁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면 아찔하다.<김강한 , "글로벌 AI 전쟁서 밀린 한국", 조선일보, 2026.10.2일자. >
업데이트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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