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올까

신상구 | 2026.10.20 11:54 | 조회 34

 

                           한국에서는 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올까

                         세계 10위권 강대국인데 과학 분야 상 못 타는 이유

 

  “우리나라에선 언제쯤 노벨상이 나올까?”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꽤 많다. 이웃 일본이 거의 매년 노벨상을 받으며 ‘엄친아’ 역할을 하고 있으니,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이 두 번 나왔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2024년에는 한강 작가가 문학상을 탔다. 두 분의 수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 노벨상 타령을 하는 것은 과학 분야 수상자가 나오지 않아서다. 과학 분야 노벨상(이하 과학상)이야말로 국력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평화상은 인권 탄압에 맞서 싸운다든지, 분쟁 해결에 기여하는 경우에 받을 수 있다. 2014년, 17세의 나이로 평화상을 받은 말랄라는 여성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는 파키스탄 탈레반의 폭정에 항의하는 운동을 한 것이 수상 이유였다. 2010년 수상자인 중국의 류샤오보는 톈안먼 사태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을 펼치다 투옥된 와중에 수상 소식을 전달받았다. 노벨상 수상을 경사로 아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중국은 그의 수상에 격분했고 본인은 물론 대리 수상 가능성이 있는 이들까지 몽땅 출국 금지해 ‘빈 의자’에 노벨상 메달을 놓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학상은 유럽에 편중된 데다(역대 수상자 123명 중 92명) 수상자를 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정치적 고려를 많이 해서 ‘평범한 작가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곤 한다. 이건 문학상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그 많은 문학작품 중 어느 것이 인간의 위대한 정신을 제대로 담아냈는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반면 과학상은 이런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메르스나 코로나19를 진단한 것은 물론, 강력사건에서 범인을 잡거나 친자감별을 하는 데도 쓰이는 PCR(중합효소 연쇄반응)을 발명한 캐리 멀리스의 노벨상 수상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우리가 너무 노벨상에 집착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도 되는 나라라면, 이런 푸념을 하는 게 맞다. 평화상이나 문학상과 달리, 과학상은 위대한 개인이 마음을 굳게 먹고 노력한다고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육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고, 연구를 위한 시설·장비가 갖춰져 있으며, 연구비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과학상을 많이 탄 나라들은 대부분 강대국이고, 일본 역시 개인 기준 31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28명이 과학상 수상이다. 우리도 ‘과학상을 타야 한다’는 말은, 이제 대한민국도 강대국이 됐다는 걸 인정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고 삼성 반도체가 세계를 호령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당연히’ 과학상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비가 부족하다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GDP 대비 우리나라의 R&D(연구·개발) 비율은 5.1%로, 세계 최상위권이니까.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첫째, 우리나라에선 모험적인 연구를 안 한다. 과학상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원리나 발견에 가중치를 준다. 예를 들어 2011년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랠프 스타인먼의 시작은 쥐의 비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돌기가 바깥으로 뻗어 있는 세포의 발견이었다. 이를 수지상세포라고 이름 붙인 그는 아무도 관심 없던 그 세포를 오랜 기간 연구한 끝에 이것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해로운 물질을 면역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 노벨상을 받았다. 2016년 ‘오토파지(자가포식)’ 메커니즘을 규명한 공로로 생리의학상을 탄 일본 오스미 교수는 수십 년간 매일 현미경으로 효모를 들여다보는 게 자신이 한 일의 전부였다며 “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주제에 몰두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게 어렵다. 가장 핫하고,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에만 연구비가 몰리다 보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첫 번째와 일맥상통하는 얘기지만 우리나라 연구계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기초과학 연구 성공률이 30%가 안 된다는 데서 보듯, 연구는 원래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 올해 생리의학상의 주인공 헤게만 교수도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그런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연구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R&D 과제 성공률은 무려 98%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연구비를 받은 뒤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그 연구자는 추후 연구비 수주 때 불이익을 받는다. 대부분의 연구원이 연구비로 생계를 잇는 상황이다 보니, 이는 곧 연구팀의 해체로 이어진다. 도전적인 연구 대신 ‘될 수밖에 없는 연구’가 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셋째, 연구의 대부분이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교수가 우수한 연구 인력인 건 맞지만, 교수가 신경 써야 할 승진과 재임용에는 논문의 질보다 양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란 연구 본연의 목적보다는 승진을 위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구원들 대부분이 연구비로 생계를 잇다 보니, 우수한 연구원을 뽑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노벨상 수상자 33명을 배출한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나 174명을 배출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그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우수한 연구 인력이 몰린다. 제발 거기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는 곳을 우리가 어떻게 이길까. 2002년 화학상을 탄 다나카 고이치도 대학교수가 아닌, 일본 중견기업 시마즈제작소의 주임이었다. 이제 우리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국가나 기업 차원의 연구소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인재들이 과학상 후보에 밥 먹듯이 오르고, 매년 상을 타는 그날을 기원한다.<서민, “한국에서는 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올까”, 조선일보, 2026.10.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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