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최불암 타계
국민배우 최불암 타계
드라마 ‘수사반장’ ‘전원일기’ 등에 출연하며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86)이 별세했다.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29일 밤 10시 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해 3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2011년부터 14년간 진행한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다. 이후 재활에 힘써왔으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9년생(호적상 1940년생)인 최불암은 인천 제물포구(당시 동구)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와 서라벌예대·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최불암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직후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가 여섯살 무렵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35세의 나이로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최불암의 큰아버지는 최불암도 같은 운명을 겪을까 우려하며 본명 최영한 대신 최불암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최불암의 어머니는 서울 명동에 은성(銀星)이라는 주점을 운영했다. 시인 김수영·박인환, 화가 김환기 등 예술인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유품을 정리하던 최불암은 외상 장부가 가득한 궤짝을 발견했다. 손님 대부분이 유명 예술인이었으니, 외상값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장부엔 코주부, 백대가리, 안경잡이, 짱구 등 외상값 옆에 이름 대신 별명이 적혀있어 수금을 할 수 없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단골들의 자존심을 배려해준 어머니의 깊은 뜻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최불암은 배우 인생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엄격한 스승을 어머니로 꼽았다.
연출가를 꿈꿨던 최불암은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해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연기 인생 67년간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를 아우르며 활약했다. 젊은 시절부터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조연이든 노역이든 가리지 않았다.
TV 드라마로 진출한 것은 1967년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뽑히면서다. 20대에 드라마 ‘수양대군’에서 노년의 김종서 역할로 출연했다. MBC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 ‘전원일기’의 김 회장, ‘그대 그리고 나’의 캡틴 박 등의 역할을 맡으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40대엔 드라마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하기도 했다.
드라마 ‘수사반장’은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즐겨 봤다. 최불암의 인터뷰와 회고록에 따르면 수사반장을 방영하던 1972년 육영수 여사가 최불암에게 전화를 건 일화가 전해진다. 육 여사는 “드라마에서 담배를 몇 대 태우시나요?”하고 묻고는 “다들 따라하면 국민 건강이 염려된다”는 우려를 전했다. 훗날 최불암은 그 전화가 평생의 교훈이 됐다고 회고했다.
스크린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영화 ‘만종’(1970)과 ‘영자의 전성시대’(1975), ‘진짜진짜 좋아해’(1978), ‘바람불어 좋은날’(1980),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으로 사랑을 받았다.
올해 5월에는 고인의 60여 년 연기 인생을 담은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가 2부에 걸쳐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당초 최불암도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싶다는 가족의 요청으로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그는 배우 김혜자와 오랜 콤비였다. 김혜자와는 ‘개구리 남편’(1969∼1970)을 시작으로 ‘궁’(2006)까지 많은 작품을 함께했다. 특히 ‘전원일기’에서 22년간 진짜 부부 같은 연기를 보여줘 실제 부부로 착각하는 시청자도 많았다.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4년간의 교제 끝에 1970년 결혼해 평생 아내 사랑이 지극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최불암은 KBS 드라마 ‘정동마님’에 출연하던 김민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고, 이를 계기로 KBS로 이적해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연극 ‘환절기’(1968) 등을 함께하며 사랑을 키웠고 부부가 돼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최불암은 잠시 방송계를 떠나 정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인연이 깊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였다. 1992년 최불암은 정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당시 전국구의원)로 제14대(1992∼1996) 국회의원을 지냈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자 1996년 ‘전원일기’를 통해 다시 본업인 연기에 복귀했다.
최불암은 배우뿐만 아니라 시사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오래 활약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시사 고발 프로그램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를 진행했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었다.
한국인의 밥상으로 10년 넘게 매주 전국을 돌 때 최불암은 “어딜 가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았다”고 했다. 각 지역 어머님들의 지혜를 모은 밥상을 만나며 최불암은 “밥상을 받을 때마다 이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어머니들 덕분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장수 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시청자와 만나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고개를 젖히고 ‘파하~’ 하고 웃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가 되며 세대를 아울러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드라마에서 그가 만든 ‘파하~’는 노모가 건넌방에 계시는데 크게 웃을 수 없어 웃음을 삼키다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적 아버지의 모습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1990년대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편 유머집인 ‘최불암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배우와 방송인이 그의 웃음소리를 성대모사했다.
최불암은 40년 이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 회장을 맡아왔다. 계기는 ‘전원일기’ 속 연기 때문이었다. 1981년 농기구를 사러 장터에 갔는데 ‘금동이’가 동냥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최불암은 발걸음이 안 떨어져 천 원을 주려다가 ‘우리 집에 갈래? 더 맛있는 것도 먹고 형아가 입던 옷도 있다’며 금동이를 데려오는 장면이었다. 방송이 나간 뒤 격려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다고 한다. 최불암은 “작가가 쓴 대로 연기했을 뿐인데 내가 위선자가 아닌가”하는 고민에 빠지고 이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에 몸담는다.
최불암은 2014년 이후 출연작이 없었다. 그는 이 이유에 대해 본지에 “내 연기에 대해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 괴리감을 느꼈다. 촬영장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면 안 된다”며 “은퇴가 아니라 물러남”이라고 했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과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국민훈장 목련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수사반장’ 출연을 계기로 1972년 처음 명예 경찰에 위촉됐으며, 2024년 명예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이 됐다. 유족으로는 배우 김민자 씨와 아들 동녘, 딸 동비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30일 오전 10시부터 일반 조문객을 맞는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거행된다. 평생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헌신해 온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례위원회가 구성된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박진성, “국민배우 최불암 타계”, 조선일보, 2026.10.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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