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삼국지’가 있고, 일본에는 ‘대망(大望)’이라는 대하소설이 있다. 미국에는 무법천지에서 총잡이들이 활약한 서부 시대가 있다. 짧은 거보다는 긴 게 있어야 호흡이 길고, 호흡이 길고 깊어야 오래 간다. 그 호흡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책략을 살펴볼 때 교훈과 재미가 있다. 한국도 50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왜 ‘삼국지’ ‘대망’ 같은 대하소설이 안 나오는가? 장강(長江)이 없어서 그런가?
현대에 벌어진 한국 정치의 흥망성쇠는 충분히 대하소설 감이 된다. 작가가 없을 뿐이다. 우선 노무현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그리고 현재의 이재명까지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나자빠진 이야기는 대하(大河)가 되기에 충분하다. 대통령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준 의사 결정의 행태,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조언과 역할, 애증과 배신, 그리고 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다이내믹하다.
윤석열 인생에서 소설적 대목은 그의 팔자이다. 태어난 일주가 경진(庚辰)이다. 백룡의 날에 태어났는데 이를 태백괴강살(太白魁罡煞)이라고 부른다. 10명 중 9명이 반대해도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 밀어붙이는 고집불통의 살이다. 이게 검사 시절에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국정원 댓글 사건, 민정수석 조국 수사 등은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결단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들이 공무원 하다가 바로 대통령이 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 김건희를 통제하라고 충고하는 주변 사람들을 잘라버리는 행태도 괴강살의 연장선상이었다. 그 괴강살이 계엄령으로까지 이어졌다.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게 보수 진영을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한편 윤석열이 차려준 밥상을 받은 이재명은 어떤가? 연대 교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서울법대라는 학벌을 가진 윤석열과 달리 이재명은 밑바닥에서 스라소니로 살았다. ‘야인시대’에 나오는 신의주의 시라소니(스라소니)는 싸움을 할 때 ‘공중 박치기’에 능했다. 5~6m 거리에서 점프하여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방의 머리통을 내리찍는 천하일품의 박치기였다. 거리 조절과 각도 계산이 정확하였다. 이재명은 스라소니처럼 민첩하고 난타전에 능하였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는 눈표범(snow leopard)으로 진화한 감이 있다. 눈표범은 3000~4000m 눈 덮인 고지대에 서식한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숲속의 스라소니로 살다가 눈 내리는 고지대의 설표(雪豹)가 되어 외로운 사냥을 해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더 고지대로 가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될 것이다.<조용헌, "政治大河". 조선일보, 2026.1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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