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잠재 비용
노후의 잠재 비용
예전에 들었던 농담 중에 경제학자는 아내를 공항에 차로 배웅해주지 않고 택시 타고 가라고 한다는 게 있다. 택시 비용보다 자신의 시간당 가치가 크기 때문에 그 시간에 연구를 하거나 강의 준비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다가 아내에게 이혼을 당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기회비용만 생각했지 이혼이라는 미래의 잠재 비용을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건강과 인간관계 소홀히 하면 질병과 고립이라는 비용 청구돼 현재의 투자에 소홀하지 말아야
사람들은 비용이라고 하면 돈부터 떠올린다. 병원비·약값·간병비·보험료처럼 통장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금액을 생각한다. 그러나 당장 장부에 기록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손실을 초래하는 비용이 있다. 이를 잠재 비용이라고 한다. 이 개념을 인생 오후에 적용하면 우리가 과소평가하는 두 가지 자산이 보인다. 바로 건강과 관계이다. 이 둘이 원활하지 않으면 질병과 고립이라는 미래의 비용을 치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건강검진을 미루고, 운동을 나중으로 미루며, 잠을 줄여가며 일한다. 그 이유는 비용이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의 비용을 아끼게 된다. 한편, 건강이 약화되는 걸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없기에 운동을 하지 않은 비용이 지금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에 건강이 무너지면서 부작용이 튀어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건강은 비가역적이다. 나이가 들면 건강을 한 번 잃으면 다시 건강해지기 어렵고 심지어 수명으로 연결된다.
건강을 잃는 손실은 병원비와 간병비라는 장부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몸이 아프면 여행을 가지 못한다. 손주와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다. 배우자와 산책하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다. 읽고 싶은 책도 집중해서 읽기 어렵고, 친구와의 약속도 하나둘 취소하게 된다. 통계에는 입원 일수가 기록되지만, 그 기간 동안 포기해야 했던 행복은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질병의 진짜 비용을 늘 과소평가한다. 건강관리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잠재 비용을 줄이는 투자이다.
고립도 마찬가지다. 노년 연구에서는 사회적 고립이 흡연이나 비만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로움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지 않아도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험이다. 갑자기 병이 났을 때 병원에 함께 가 줄 사람,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조언해 줄 사람, 우울한 날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평소에 그 존재가 의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관계가 사라지면 그 빈자리는 엄청난 비용으로 돌아온다.
관계를 만드는 시간은 당장의 효과는 없고 비용만 들기에 소홀히 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더욱 그렇다. 회사라는 공동체가 사라지면 인간관계도 함께 줄어든다. 만날 때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다음에 만나지” “나중에 연락하지” 하며 미루다 보면 어느새 전화할 사람이 없어진다. 관계는 평소 조금씩 적립해야 위기 때 인출할 수 있다. 미래에 부담하게 될 잠재 비용을 감안하여 현재에 투자해야 한다. 관계에 대한 투자는 노후에 불어오는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온천을 만들어 준다.
잠재 비용의 관점에서 보면 운동과 식단 관리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친구를 만나는 것은 한가한 사람의 취미가 아니라 미래의 돌봄 비용과 외로움의 비용을 줄이는 투자이다. 배우자와 대화하는 시간도, 동호회에 참가하는 일도, 지역사회 활동도 모두 미래의 잠재 비용을 줄이는 자산관리다. 다만, 무작정 관계의 확장이 아닌 질적 깊이를 더하는 관계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미래의 잠재 비용은 현재에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운동을 미룬 대가도,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은 대가도, 부부의 소통을 소홀히 한 대가도, 가족과 시간을 갖지 못한 대가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비용은 복리처럼 불어나 우리의 삶을 잠식한다. 성공적인 노후는 돈뿐만 아니라, 건강이라는 자산과 사람이라는 자산의 잠재 비용을 잘 관리한 사람에게 찾아온다.<김경록, “노후의 잠재 비용”, 중앙일보, 2026.1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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