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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여신 문화의 자취

2023.06.16 | 조회 1922 | 공감 0

이스라엘 여신 문화의 자취


김현일(상생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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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유일신관을 만들어 내었다. 기독교 및 이슬람의 신관은 이스라엘 유대교의 유일신관을 고스란히 계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처음부터 다른 신들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주변 다른 민족들의 신들도 널리 숭배하였다.


야훼만을 유일한 신으로 인정하고 다른 신들의 존재를 모조리 부정하는 사상은 히브리인들이 바빌론 포로 신세에서 벗어나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에 서서히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가 내려준 율법을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바빌론 제국의 포로로 전락하였다고 믿었다. 이들은 야훼 숭배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한편 주변 다른 족속과 통혼한 유대인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내쫓는 과격한 조처도 꺼리지 않았다.


이들에게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을 수메르 땅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게 만들고 또 이집트로 이주해간 그 후손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구해낸 신이었다. 그리고 야훼가 다른 족속들이 살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겨주고 이스라엘이 번성하는 민족이 되도록 축복하였다고 믿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야훼는 당연히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유일한 신이었다.


“쉐마 이스라엘”로 일컬어지는 〈신명기〉 6:4-5 구절은 이 점을 분명히 나타내준다.

“들어라 이스라엘, 우리 하나님 야훼는 한 야훼이시다. 너는 너의 하나님 야훼를 너의 마음을 다하여, 너의 영혼을 다하여, 너의 온 힘을 다하여 섬겨라.”


그리고 야훼가 아닌 다른 신들, 사방에 인접한 족속들의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다. 일부 신학자들은 이 유명한 구절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나타내는 구절로 보지만 이스라엘을 둘러싼 족속들의 여러 신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야훼만이 유일신이라는 뜻은 아니고 단지 야훼는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유일한 민족신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서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야훼 신만을 섬기지는 않았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던 솔로몬 왕은 지혜로운 왕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후궁이 칠백 명, 첩이 삼백 명이었을 정도로 여자를 좋아한 왕이었다. 그의 여인들 중에서 모압, 암몬, 에돔, 시돈과 히타이트 등 주변 이방족속 출신들도 있었는데 솔로몬은 이 여인들을 위해 이방신들의 신전을 지어주고 거기서 분향하고 제사를 올리도록 허용하였다.(열왕기상 11:8)


이방신들 가운데 바알과 아쉐라가 특히 인기가 있었다. 가나안인들의 주신 바알은 바빌론의 주신 마르둑과 같은 신이다. ‘바알’은 주님이라는 뜻으로 비를 내려주는 신 즉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신이었다. 이런 면에서 유목민 신의 성격을 띤 야훼와는 대비된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인들도 농사는 지어야 하였기 때문에 바알 신도 숭배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쉐라 여신은 흔히 바알의 배우자 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신상이 많이 남아 있고 또 구약성경의 역사서에도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널리 숭배되었던 것이 확실하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 사후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나뉘었는데 북쪽의 왕국을 이스라엘이라 하고 남쪽의 왕국을 유다 왕국이라 하였다. 솔로몬 왕은 여러 성전들을 짓고 또 여러 도성들을 건설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는데 이 때문에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부역 부담을 져야만 하였다. 이러한 솔로몬 왕의 정책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져 결국 솔로몬 왕이 속한 유다 지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지파가 다윗 왕가의 지배를 거부하고 따로 독립된 왕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지지한 부족의 수로나 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이름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북왕국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이 다스리는 유다 왕국보다 더 우세한 나라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남쪽 유다 왕국에는 야훼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이 있어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그에 맞서 수도 사마리아에 야훼 신전을 지어 유다 왕국의 종교적 정통성 주장에 맞섰다. 물론 사마리아에는 야훼 신전만 지어진 것은 아니다.


이 북왕국에서 이방신 숭배가 남쪽보다 더 성행하였다. 주변 나라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일까? 일부 왕들은 솔로몬처럼 외국 공주를 왕비로 맞았다. 아합 왕(재위 BCE 871-852)은 그 치세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는 인물인데 무역도시로 유명한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삼았다. 그리고 부인의 영향을 받았던지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짓고 또 신전 안에는 바알을 위한 제단도 쌓았다.(열왕기상 16:32)


아합 왕 당시 이스라엘 왕국에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쉐라 선지자 400명이 있었다고 한다.(열왕기상 18:19) 이 선지자들은 모두 왕실 예산으로 먹여 살리던 사람들이었다. 이방신들을 섬기는 많은 사제들을 이스라엘 왕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부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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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더불어 널리 숭배되었던 아쉐라 여신을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하늘의 여왕’이라고 칭하였다. 바알이 하늘의 왕이고 아쉐라는 하늘의 여왕이었던 셈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예레미아 선지자는 유다 왕국이 멸망할 즈음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유다 왕국의 피난민들과 함께 이집트로 억지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이스라엘 여인들은 피난처에서도 과자를 구워 그 하늘의 여왕에게 바쳤다고 한다.(예레미야 44:19) 이스라엘 여인들은 야훼가 구해주지 못한 유다 왕국을 아쉐라 여신에게 구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이슈타르 여신상


아스다롯 여신도 아쉐라 여신과 같은 신이다. 원래는 수메르 여신이었는데 시리아와 페니키아 등 여러 지역을 거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까지 전파되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아쉐라와 아스다롯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동일한 여신을 가리킨다.


수메르에서는 그 여신을 인안나라고 불렀고 바빌론에서는 이슈타르라 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이 여신을 자신들의 아프로디테 여신, 로마인들의 비너스 여신과 같은 여신이라고 보았다. 인안나 여신은 수메르에서도 아주 높은 여신이었데 신전 수가 가장 많은 신이었다고 한다.


인안나 여신 숭배가 널리 행해진 것은 이 여신이 성과 사랑, 또 생식을 관장하는 여신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인안나 여신의 신전에서는 신전을 지키는 여성 사제들이 신전을 찾아오는 남자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맺었다. 이런 여자들을 바빌론에서는 ‘이슈타리투’라고 불렀는데 ‘이슈타르의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신의 여자들이니 성스러운 존재였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BCE 5세기 중반경 바빌론을 방문하였다. 그는 바빌론 신전에서 이슈타르의 여인들을 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빌론의 여자들은 일생에 한번 아프로디테(이슈타르) 신전에 가서 그곳에서 낯선 남자와 교합해야 한다. 신전에 앉아 있다가 자신의 무릎에 은화 한 닢을 던진 남자와 관계를 맺어야 했는데 그 제안을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다. 일단 교합이 끝난 여자는 신에 대한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겨져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이러한 관습을 수치스런 것으로 비난하는데 잘 생기고 키가 큰 여자들은 금세 돌아가지만 못생긴 여자들은 의무를 다할 수 없어 오랫동안 신전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이야기는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 제1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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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신화에는 인안나의 남편이 나온다. 양치기들의 수호신 두무지로 바빌론에서는 이 신을 ‘탐무즈’라 불렀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두무지가 지하세계로 끌려갔는데 결혼 후 자신에게 마음을 쏟지 않는 남편에 대한 인안나 여신의 분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두무지는 반년은 지하세계에 붙잡혀 있고 반년은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 인안나와 함께 거한다.


그가 하계에서 다시 올라오도록 여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 중동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스라엘 여인들도 이러한 관습을 행하였다. 그것도 야훼 신전에서 그러한 의식이 행해져 야훼주의자인 에스겔 선지자의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에스겔 8:14)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나무나 돌로 아쉐라 상을 만들어 신전의 제단 옆에 세워두거나 집의 신단에도 놓아두고 섬겼다. 그 상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야훼주의를 신봉하는 왕들이 이방신 숭배를 타파하는 종교정책을 시도할 때에 이 아름다운 여신상들은 제일 먼저 파괴의 표적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방신 숭배가 이스라엘에 들어와 야훼 신앙과 결합하자 아쉐라가 바알이 아니라 야훼 신의 배우자라는 믿음도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자들이 시나이 반도에서 발견한 한 토기파편에는 ‘야훼와 그의 아쉐라에게’라고 헌사를 새겨놓았다. 야훼도 한때는 마누라가 있었던 것이다.  



야훼와 아쉐라 여신의 모습이 그려진 토기파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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