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성공에 대한 새 이야기의 주인공 증산 상제님


행복과 성공에 대한 새 이야기의 주인공 증산 상제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구촌은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기성 종교나 철학에서는 그 근본 원인과 해결책을 올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전차처럼 이윤만을 추구해 온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자연은 점점 파괴되었고, 인간성은 더욱 사나워졌으며,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 악순환이 거듭되어 이제는 그 극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만일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모두가 파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새 자연, 새 인간, 새 문명의 탄생’ 이라는 위대한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자연과 문명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지난날 그 어떤 성자와 철인도 전혀 언급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 말입니다. 바로 그 새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미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지 않은 내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곁에 오신 그분은 알 수 없는 내일을 이미 벌어진 어제의 역사로 만드셨습니다. 앞으로 열리는 완전히 다른 새 세상, 새 문화의 틀을 미리 짜 두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를 돌아 볼 때, 그분은 동서양 역사에서 가장 감추어진 인물, 가장 연구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 분의 삶과 위대한 새 진리 말씀이 역사 속에 깊이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그 분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19세기 말, 이 동방 한반도 땅에 태어나신 증산甑山 제님입니다. 강씨 문중으로 오셨기에 강증산 상제님이라고도 부릅니다.



'상생'은 본래 상제님 도의 주제


상제님은 1871년 전라도 고부군 객망리客望里, 즉  ‘하늘의 주主를 기다리는 마을’에서 탄강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분을 모르지만, 그분의 가르침의 주제는 이미 너도나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 언어로 숱하게 쓰고 있는 ‘상생’이 바로 그분이 내려 주신 가르침의 핵심 주제입니다. 정치인, 경제인, 종교가, 예술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 상생을 이야기합니다. 20년 전에 이미 『상생의 신학神學』이라는 책이 나왔고, 포항 앞바다에 불쑥 솟은 손 조형물은 ‘상생의 손’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상생이 증산 상제님의 위대한 가르침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또한 상생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함께 잘 살자, 그만 싸우고 사이좋게 잘 지내자’ 하는 공생共生의 의미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생은 그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상생은 ‘남 잘되게 하는 것’, ‘대자연의 변혁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일찍이 “나의 도는 상생의 대도이니라”(2:18:1)고 선언하시고, 상생의 실천 방법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 ‘살릴 생 자 공부’라고 하셨습니다.

 

❃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라. (2:29:1)
❃ 나 살고 남 살리는 공부니 사람 잘되기를 바라소. (11:123:3)


그런데 보다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상생의 뜻은, 상제님께서 열어 주신 ‘새 우주의 질서’입니다. 바로 이를 바탕으로 인류가 꿈꾸어 온 상생의 조화 문명이 열립니다. 그 세상에는 인간의 마음도 상생이 근본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우주의 관계도 모두 상생으로 돌아갑니다.